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영화 <헤어질 결심> 해피엔딩...마침내!
    시네마 리뷰 2023. 2. 24. 10:42

    각본: 정성경, 박찬욱 / 감독: 박찬욱

     

    박찬욱 감독은 거칠고 원초적이었던 자신의 전작들과 다른 순한 맛의 로맨스 스릴러 <헤어질 결심>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해피엔딩! 그 동안 박찬욱 감독 작품들은 ‘복수’라는 소재로 ‘사랑’이란 주제를 말 해 왔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사랑의 대상이 타인에 의해 소멸, 상실되고 이로 인한 고통을 그 타인에게 돌려주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은 가족(복수 3부작)에서 주인공의 강한 신념(박쥐) 내지는 불우했던 과거의 자신(아가씨) 등으로 바뀌어 왔고 복수라는 거친 소재와 플롯으로 중심 주제인 ‘사랑’을 감춰왔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헤어질 결심>에서는 ‘사랑’이 마침내 표면 위로 부상하고 마침표를 찍는다. 그 마침표를 해준(박해일)이 아니라 서래(탕웨이)가 찍기에 해피엔딩이다.

    <헤어질 결심>은 범인이라는 의심과 사랑의 확인 사이를 반복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의심과 확인의 주체가 얼핏 해준으로 보여지나, 서사의 주체는 ‘서래’라 생각한다. 그리고 서래는 어쩌면 신격화된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다음 영화)

    용의자로 서래가 의심받던 영화 초반, 카메라는 서래가 나오지 않는 씬에서도 마치 서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앵글 구도를 잡는다. 서래를 처음 만난 후 부검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라는 해준과 후배 형사인 수완(고경표)과의 대화 씬을 보면, 그 둘은 여러 개의 계단 층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주고받는 데, 카메라는 그 중간에 위치하면서 180도로 패닝을 하며 말 하는 자를 번갈아 보여본다. 마치, 해준과 수완의 중간에서 서래가 해준과 수완이 말 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가며 보는 것처럼.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추락하여 사망한 현장 검증에서 눈 뜬 기도수 시점에서 산 위를 올려다보는 씬에서도 (이건 나중에 느낀거지만) 서래가 마치 기도수의 눈을 빌려 해준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좀 더 결정적인 것은 해준이 망원경으로 서래를 감시하던 씬들에서 나온다. 보살피는 월요일 할머니가 낮잠 주무시는 동안 서래는 식탁에서 번역을 하고 있고 해준은 망원경으로 이를 지켜보는데, 순간 서래는 고개를 들고는 자신을 훔쳐보는 해준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해준은 놀라서 망원경에서 황급히 눈에 뗀다. 늦은 밤에 서래의 집을 망원경으로 감시하던 해준은 이윽고 말한다. “우는 구나. 마침내” 서래는 해준의 이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고 그녀의 고개는 심지어 해준과 반대 방향이다. 해준의 대사가 나오고 조금 지나 카메라는 서래를 비추는데…서래는 살포시 미소 짓고 있다. 마치, 해준이 우는 자신을 보고 의심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걸 알기라도 한 듯

     

    그리고 ‘플래쉬 포워드(flash forward)’라는 영화 기법을 사용해 더욱 서래가 신격화된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플래쉬 포워드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 등을 미리 보여 주는 기법으로 예언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이포에서 둘이 재회한 씬에서 나온 서래의 대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가 영화 초반 서래의 집을 보여주는 씬에서 내레이션으로 들려 나온다.

    (출처: 다음 영화)

    Bird’s eyes view, 카메라 시점이 하늘에서 새가 땅을 내려다보듯 찍는 앵글을 말한다. 이 앵글은 박찬욱 감독이 종종 사용하는데 JSA에서도 이영애 배우가 쓴 우산을 위에서 내려다 보다 판문점 지붕으로 전환되는 씬이 그렇다. 이러한 앵글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대변하기에 딱 알맞는데 <헤어질 결심>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 이별 시퀀스에서 운전하던 서래가 해준에게 “사랑한다고 했을 때”라고 하자 해준이 “전 사랑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서래는 차를 세운다. 그리곤 바로 이 전지적 시점인 bird’s eyes view가 나오며 저 먼 하늘 위에서 긴 방파제 위에서 멈춰 버린 서래의 차를 응시한다.

     

    서래는 해준과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이끌고 나간다. 용의자로 의심을 받든지 말든지. 든든한 남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으니 자신이 직접 든든한 남자, 해준을 선택한다. 서래를 사진으로 본 순간부터 해준은 서래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둘이 첫 대면하며 심문하는 도중에 해준은 (수완의 한으로 남은) 비싼 일식집의 모듬 스시 도시락을 서래에게 사 준다. 그리고 도시락을 다 먹은 후 정리하는 장면이 잠시 나오는데, 도시락 뚜껑을 닫고 테이블을 닦는 그 과정은 서래와 해준이 티키타카가 잘 맞는 듯 커플을 보는 듯하다. 다 정리 후 카메라는 빈 간장캡슐과 뜯지 않은 간장캡슐을 보여준다. 식사 후 서래가 양치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앵글은 거울에 반사된 양치하는 서래를 보여주는데 그건 해준이 훔쳐보는 모습 같다.

    (출처: 다음 영화)

    해준은 추적중인 이지구(이학주)가 오빠PC방에 있다는 걸 알고 긴급히 출동한다. 위치를 엿들은 서래도 그리로 운전해 간다. 어느 집 옥상, 해준에게 칼을 들고 덤비는 범인의 모습을 서래는 무서워하거나 놀라기는 커녕, 해준이 ‘과연 든든한 남자인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호감과 든든한 남자인걸 확인한 서래도 길고양이에게 그 남자의 심장, 그러니까 마음을 가져오라는 주문 같은 대사를 하며 마음을 키워 나간다.

     

    서래의 해준에 대한 호감의 커지는 걸 서래의 의상 컬러의 변화로도 볼 수 있다. 영화 초반 서래는 푸른 계열의 의상을 입고 있다. 그리고 집 벽지 무늬는 넘실대는 진한 파란 파도를 보는 듯하다(그러면서 산 능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상 소재도 벨벳이어서 마치 파도처럼 입체감이 느껴진다. 펜타닐 캡슐도 파란색. 그리고 마지막 스스로 검푸른 바닷속으로 잠식되어 가는 걸 보면 어쩌면 서래는 바다에서 태어난 신적인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높은 곳을 두려워 하는게 아닐까. 서래 어머니는 한국에 가면 너의 산이 있다고 한국에 가라는 유언 같은 걸 남기면서 서래는 한국에 자신의 산을 찾아왔고, 다시 집인 푸른 바다로 돌아 가려면 말로만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 든든한 남자의 진심 어린 사랑이 필요 했던 게 아닐까?

    (출처: 다음 영화)

    해준이 서래를 봐준다고 믿는 수완이 술에 취해 서래의 집에서 자고 있는 씬에서 서래는 밝은 노랑 벨벳을 입고 있다. 이 씬 이후에 해준은 자신이 할 줄 아는 이상한 중국 요리를 서래에게 해준다. 그에 대한 보답(?)인듯 서래는 미제 사건이던 홍산오(박정민)을 잡을 힌트(신적인 존재니까)를 준다.

    이후, 불면증에 힘들어 하는 해준을 잠재워 줄 때의 서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다. 서래의 나풀거리는 기분을 보여주듯 펄 소재의 분홍색 상의. 이후, 비 오는 날 사찰에서 서래는 해준이 피를 무서워하고 해준의 선글라스, 립밤, 캔디 등이 그 많은 주머니 중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면서 서로의 사이는 가까워져 간다. 그리고 해준은 오빠PC방에서 놓친 범인이 도망치던 그 많은 계단을 오르며 의심을 쌓아 갔듯이, 사찰의 계단을 내려오며 풀려진 신발끈을 묶는 것처럼 서래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사랑하는 마음 다져 묶는다. 이 때, 재밌는 건 신발끈 풀린 걸 서래가 보고는 턱으로 그걸 가리키는 장면이다. 마치, ‘이제 의심을 거두고 나를 사랑하라’ 하듯이.

     

    (출처: 다음 영화)

    하지만 인간은 한 번 의심하게 되면 거둬들일 수 없는 것일까? 사랑이란 감정도 함께 있다면 더욱 더. 해준은 서래 남편이 추락사 한 산을 다시 오르며 자신의 의심 시나리오가 맞다고 확증하고는 붕괴되었다며 서래를 떠난다. 하지만 해준 자신이 붕괴 되었음에도 증거가 되는 폰을 바다 깊은 곳에 버리라며 자기를 지켜주는 해준의 말을 서래는 사랑으로 받아 들인다. 하지만 해준도 스스로 서래를 사랑한 것을 스스로 인정을 해야 완성이 되는 것이다. 해준을 만날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그것을 서래는 다시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마지막 해준과의 통화에서 해준이 사랑한단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서래는 차를 세우고 힘없이 웃다가 통화를 끊자, 내레이션이 들린다.

     

    ‘사랑한다고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해준은 결국 서래가 차에 둔 폰에서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는 사랑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만조가 시작된 바다로 뛰어 들어가 서래씨를 있는 힘껏 외치던 해준은 풀려진 구두끈을 보고는 다시 단단하게 묶는다.

    비극적으로 보이는 마지막 이별 시퀀스에서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서래는 구멍을 판다. 스스로 바다로 돌아가는 그 구덩이에 들어간 서래는 그러나 평온해 보인다. 살짝 미소까지 머금고 있다. 마치, 임무(인간과의 사랑)을 완수하고 집(바다)으로 돌아가는 모습처럼.

     

    PS. 서래와 해준이 첫 대면한 씬에서 모듬 초밥을 간장에 찍어 먹지 않은 건 서래일 것 같다. 서래는 바다에서 온 존재라 간장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진 않을까

    (출처: 다음 영화)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