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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오컬트 영화 <사바하>시네마 리뷰 2023. 2. 24. 10:30
각본, 감독: 장재현
영화 <사바하>는 오컬트 장르에 미스터리(과거 이상스러운 사건의 진실 규명)식 서사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이 미스터리 오컬트라는 장르적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채우지 못해 아쉬운 영화였다. 이 외에 개연성에서도 설득력이 낮다. 거기다 신의 존재 이유까지도 묻고 있으나, 영화는 물음에서 멈춘다. 오컬트 영화에서 신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품는 건 단골이기도 하다. 다만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할 터. 오락 위주의 오컬트 이냐, 신적 존재론에 다가가는 오컬트 이냐. <사바하>는 그 노선이 어딘가에 모호하게 서 있다.
미스터리 장르에서의 기대감은 처음에는 그닥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며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얽히고설킨 모습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오는 몰입감을 시작으로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사건 본질을 보니 관객이 예상했던 바와 전혀 다를 때 오는 충격에 있다. 오컬트 장르적 기대감은 사람의 힘으로 대항이 불가능한 악령이 주는 공포와 그 악령을 결국에는 물리치는 대서 오는 공포의 해소, 통쾌함이다.
몰입, 충격, 공포, 통쾌, 이 네 가지 장르적 기대 측면에서 <사바하>는 ‘보통’이라 할만하다.
몰입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시선을 집중시키고 물음표가 따라붙는 사건이 등장해야 한다. <사바하>는 ‘악’으로 보이는 비주얼을 가진 ‘그것’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 “그것은 왜 태어났는가?” 그러나 영화는 그 이후부터 박목사(이정재)가 사슴동산을 이단불교단체인지를 파헤치는 탐사보도 형태를 보여주며 미륵이라 불리는 김제석(유지태)을 추적하는 퍼즐 1. 정나한(박정민)의 살인교사와 살인(미수에 그치지만)이 벌어지는 퍼즐2. 이 두 퍼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것이 왜 태어났는지 물음에 답은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제시된다. 이러한 서사 구조로 인해 몰입감이 떨어진다. 두 퍼즐과 ‘그것’의 잉태 이유 사이의 연관성도 함께 따져가야 몰입이 이루어질 텐데, <사바하>는 그러하지 못하다.
(출처: 다음 영화) 장재현 감독은 어쩌면 ‘충격’(내지는 반전)에 방점을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우선 보이는 악(그것)이 실은 진짜 악을 구하기 선이라는 반전 설정 하나. 그런데 실은 이 선과 악이 동일(그것과 김제복 둘 다 손가락이 여섯 개)하다 라는 점 둘. 김제석이 정말 늙지 않고 죽지 않은 미륵이라는 점 셋. 이 세 가지 설정을 충격적으로 선사하기 위해 감독은 두 개(박목사와 정나한)의 퍼즐로 위 세 가지 설정을 꽁꽁 싸매어 놓고 있다.
그렇게 ‘그것’과 관련된 작은 단서 조차 새어 나지 못할 정도로 싸매었다가 한꺼번에 풀어내는 방식에서도 영상 이미지(내지는 편집 효과)가 아닌 박목사의 대사로 하다 보니 충격파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밖에.결말에서 밝혀진 ‘그것’이 태어난 이유는 미륵이라 불리나 무고한 소녀를 살인 교사한 김제석을 죽이기 위해서다. 김제복은 자신이 100년 후 99년생 소녀에 의해 죽는다는 예언을 막기 위해 고아 소년 넷을 양아들이자 제자로 키워내고 그들이 불특정 99년생 소녀를 죽이도록 시킨다.
그럼 왜 ‘그것’은 악마의 형상을 하고 태어났고, 또 왜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그것'은 동생 금화의 다리를 물어뜯었는가? 이 물음의 답은 영화에 없기 때문에, 단지, ‘그것’이 악의 형상이라는 반대 이미지를 관객에게 주어 나중에 악이 아닌 (일종의 정의 실현을 위한) 선한 존재라는 반전을 위한 설정으로만 여겨진다. 뱀과 새를 조정하여 사람을 공격하는 설정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오컬트 영화에서 흔하기에 식상하기도 했다(까마귀가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할까).
김제복과 ‘그것’은 실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라는 점을 손가락 개수(6개)로 보여준 점은 그 의도가 의문스럽다.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손가락 개수를 왜 징표로 삼았을까? 만약 여섯 개 손가락이 실제 자료 조사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영화에서는 좀 더 상상력을 발휘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점이 아쉽다. 그리고 정나한은 왜 병상에 누운 가짜 김제복 손가락 개수는 확인하면서도 실제 김제복(유지태) 손가락은 확인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을 만난 정나한은 모든 걸 의심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출처: 사바하) 설마 했던 김제복은 정말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 밝혀진다. 그는 미륵이 아닌 악의 화신이다. 영화 속 대표적인 악의 화신으로 <데블스 에드버킷(1997)>의 존 밀튼(알 파치노)이 있다. 김제복이 불로장생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존 밀튼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비교하게 되는데, 배우의 연기를 떠나서, 이 둘은 우선 스케일이 다르다. 존 밀튼은 이 세상을 악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전복하려는 욕망이 있는 반면, 김제복 욕망은 불로장생이다. 존 밀튼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힘, 바로 법의 권력을 이용한다. 그럼 김제복은? 고작 4명의 어린 고아를 키워 자신이 죽을 예언을 막기 위해 살인교사 한다. (4명은 불교에서의 사천지왕을 도입하다 보니 나올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소재가 이야기 발목을 잡아버렸다)
김제복은 너무 소심한(?) 악의 화신이다. 선과 악 각자의 욕망의 크기가 작으니 그 충돌 또한 작을 수밖에. 인간도 원하는 불로장생이라는 이 욕망의 크기 때문에 <사바하>는 결국 장르적 기대감 중 ‘충격’, ‘공포’에 실패하고 그러기에 공포의 해소인 ‘통쾌함, 안도감’에도 이르지 못한다.
오컬트 속 공포는 비주얼과 사운드 비중이 매우 높다. <사바하> 속 비주얼한 공포는 ‘그것’의 모습과 정나한 꿈속에 등장하는 자신이 죽인 아이들의 혼이다. 이 두 캐릭터 모습 모두 온몸이 검고 유독 눈만을 빨갛게 강조한다. 이런 이미지는 그러나 여러 호러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다. 정나한이 잠든 모습 위로 죽은 이들의 많은 다리가 매달린 숏이 조금 무서운 숏이었다. 음악은 신경을 날카롭게 긁는 하이톤보다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베이스 저음 위주였으나 영상 이미지와 서사의 긴장감 자체가 떨어져 음양 효과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사바하>는 서사 구조 면에서 미스터리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하였고, 호러 오컬트 장르가 주는 공포와 통쾌함도 충분하지 못했다. 인간이 악의 화신이라는 <데블스 에드버킷>과 오프닝부터 악의 존재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 <오멘> 시리즈 같이 익숙한 설정들과 특별할 것 없던 이미지와 사운드도 아쉽다. 여기에 불교 소재(미륵, 사천지왕)를 가져왔으나 여기서도 뭔가 오컬트적 요소가 부족해 보인다.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은 서양의 주마 의식을 소재로 악령이 깃든 소녀를 구하는 두 신부의 이야기로 간단명료하게 정의가 된다. 반면, <사바하>는 좀 더 선과 악을 이야기 전면에 내세우면서 여기에 반전을 기하고 신적인 존재 이유까지 묻는 복잡한 영화이다. 감독이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하여 장르적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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