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견디는 자의 삶의 무게

오피스아웃 2023. 2. 23. 17:20

감독: 린 램지

각본: 린 램지

원작: 너는 여기에 없었다 (조나단 에임즈)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참전 군인이었으나 현재는 고용 킬러인 조(호아킨 피닉스)가 상원의원의 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를 미성년자 성매매 소굴에서 구출하는 이야기이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 <레옹> 등을 떠올리게 되나, 이들 영화가 구출 과정에 집중한다면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조의 심리 상태와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 액션 장면 카메라가 조가 일을 다 끝낸 이후 모습에 여전히 멈춰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는 쾌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대부분 씬들은 그래서 배우들의 행동 또는 카메라 앵글, 상징적인 소품과 음악을 최대한 동원하고, 대사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조가 가진 심리 상태 변화를 요약하면, 초반은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 중심인 반면, 중후반으로 가면서 분노와 안도감, 책임감, 자기혐오 등 상호 모순된 감정이 섞이게 된다.

(출처: 다음 영화)

미성년자 납치, 성매매, 살인, 가정 폭력, 트라우마로 구성되는 이야기 소재와 배경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감정으로 보이나 <너는 여기에 없었다> 속 주인공 조에게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특히, ‘책임감’이란 감정에 보다 주목하고 싶다. 어린 조는 망치를 휘두르는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지키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영화가 직접적인 증거를 보여주지 않지만, 시종일관 자살을 시도하나 도중에 스스로 중단하고 정부 요원에게 어머니가 살해당한 후 호수 속에서 자신도 (이번엔 진짜로) 죽으려 하지만 다시 물 밖으로 나온 점을 보면, 추측컨데 어린 조는 어머니를 망치로부터 구하지 못했다.

(출처: 다음 영화)

호수 속 자살 씬에서도 조는 아직 구하지 못한 아이, 니나 환영을 보고 자살을 중단한다. 니나를 구하지 못한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망치로부터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과 부채 또한 조를 물 밖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동력이다. 또한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뜰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감정이 조에게 없다면 캐릭터 성격 상 현재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단 이유만으로 그가 자살을 도중에 중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임감 그러니까 조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이 ‘어머니’에서 ‘니나’로 옮겨 가는 구조이나, 그 안을 관통하는 감정은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 여기서 더 나아간 자기혐오이다.

 

영화 결말에서 조는 니나 납치를 지시하고 범한 주지사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는데 실패한다. 영화 오프닝에서 조는 “좀 더 잘 해야 해”라고 자기 암시를 줄곧 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의 주도자인 주지사를 처단하지 못하자 “난 너무 나약해”하며 울부짖는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망치로 미성년자 납치, 성매매한 ‘남자’들에게 되갚아 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근본 악(惡)인 아버지와 주지사를 처단하는 데 실패한 것은 조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진 한계인가? 결국, 근본 악의 처단은 피해자인 여성인 어머니와 니나가 해낸다.

제목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그래서 ‘너=조’이며, ‘여기=근본 악을 처단하는 장소’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조는 근본 악을 처단하는 바로 그 장소에 없었다고 해석된다.

 

조에게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지만 실패한 대상이 어머니에서 니나로 한 명 더 늘어났다.

(출처: 다음 영화)

영화 초반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자살을 시도하던 조는 주지사 처단 실패 후 식당에서 권총 자살을 상상한다.

다시 조의 이전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자리는 아직 보호자가 필요한 열두 살 소녀인 니나가 와 있을 뿐이다. 조에게 2 round가 시작된 것일 뿐, 어떠한 감정적 해소도 일어나지 않는다.

니나가 돌아와 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디로 갈 거냐’란 질문은 지금 당장 어디로 갈 것인 지와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도 내포돼 있다. 조는 ‘모르겠어’라고 답한다.

 

2 round는 둘 모두에게 훨씬 더 힘들게 당연하여 슬프다.

 

말(대사)이 아닌 이미지, 행동, 음악으로 이야기 속 주요 감정을 놓치지 않고 이끌어 간다는 점이 <너는 여기에 없었다> 가진 성취이다.

내게는 그래서 <택시 드라이버>, <레옹> 보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스트 인 더스트>, <조디악>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히치콕은 “무성영화야 말로 가장 순수한 영화적 형태”라고 말한 것처럼, <너는 여기에 없었다> 연출 덕분에 '순수'하다란 느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조가 사건 처리하기 전 사우나에 가서 목욕재계 하고, 망치와 비닐봉지가 주는 상징과 어머니를 살해한 정부 요원을 권총으로 쏜 후 조 자신도 옆에 눕고 손을 잡는 행동, 어머니 주검을 감싼 비닐이 운전 중 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으로 펄럭이자 살짝 놀라는 조의 표정, 어머니의 주검 처리가 호수라는 점, 영화 속 노랫가사들 등은 각각의 상징성과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원작 소설은 ‘타임’이 선정한 2016년 올해의 범죄 소설 수상, 영화는 2017년 칸 영화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

 

최근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 전개 상 전달해야 할 내용과 배경 설명을 대부분 ‘대사’로 처리하는 점이 참 아쉽고 마음에 안 들었지만, <너는 여기에 없었다>와 같은 영화들이 종종 나와 영화 보기를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