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인 것, 영화 <툴리>
각본: 디아블로 코디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
영화 <툴리>는 서사보다는 주인공 변화를 영상으로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영화적인 것이라고 한 이유는 글이 전달해 줄 수 없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영역을 <툴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시 더 나아가서는 사진이 줄 수 없는 영역에서 작동하는 영상과 사운드가 주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튤리>가 빼어난 미학적인 영상, 기존 영화 장면에서 볼 수 없었던 파괴와 충격을 주는 장면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 변화를 영상으로 잘 풀어낸 점이 인상 깊은 영화다.
영화 속 심리 변화 주체는 물론 마를로다. 세 번의 출산 후 마를로 대사대로 원래 보다 1.5배씩 커져서 이제는 비대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몸의 부피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힘들고 피곤에 지쳐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다 카메라는 자주 마를로의 얼굴을 클로즈 업 해서 그녀의 초점 없는 눈을 보여준다. 눈 밑 다크서클과 함께.
어느 저녁 식사 시간, 이제 겨우 식탁에 앉은 마를로는 ADHD로 의심되는 아들 조나가 엎지른 우유로 옷을 적시게 된다. 이미 탈진에 가까운 마를로는 화를 내거나, 조나에게 잔소릴 퍼붓는 대신 초점 없는 눈으로 화를 허공으로 날려 보낸 후, 젖은 티셔츠를 벗는다. 젖은 상태라 잘 벗겨지지 않은 티셔츠는 몸에 달라붙어 늘어만 난다.
그러다가 마치 늘어난 스프링이 튕겨나가듯 떨어져 나간다. 건너편에 앉은 딸 사라는 잠시 후, “엄마, 몸이 왜 그래?” 비대한 살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쳐져 있는 그녀는 그냥 그대로 있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고 그러니까 마를로가 식탁에 앉는 모습부터 계속 보여준다. 마치 응시하듯이. 응시하고 관찰하는 카메라 움직임은 영화 내내 계속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3가지 ‘왜’가 생겨났다. 첫 번째, ‘왜 물 속인가?’ 물속 씬은 총 세 번 등장한다. 두 번은 마를로 꿈속에서, 그리고 마지막 마를로가 몰던 차가 호수로 떨어졌을 때(물론 이 때도 꿈이거나 환상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마지막 물속 씬에서 툴리(맥켄지 데이비스)가 인어로 나타난 점이다. 마지막 질문은 ‘왜 마를로는 스물다섯 살 때의 자신을 소환한 것인가?
첫 번째 물속 씬은 화면 가득 조명을 받아 여러 다른 톤을 가진 파란 그라데이션으로 채워져 있다. 점차 화면 속 누군가 유영하며 멀리서 보이다가 끝난다. 이 꿈 이후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툴리는 양수가 터진다. 물론 물이 양수를 지시하거나 출산 임박을 상징한 건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출산 이후에도 물속 꿈은 두 번 더 나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물속 꿈에서는 유영하던 누군가의 모습이 좀 더 가까워져 있다. 그래도 아직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세 번째 꿈에서야 스물다섯 살 툴리인 것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이를 마를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꿈이니까)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독박 육아 현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물다섯 살 때의 자신인 툴리를 부른 것이라 해석하였다. 하지만 이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구조상 세 번째 꿈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인어가 된 툴리 씬은 결말 부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미 그전부터 야간 보모로 툴리가 등장하고 심지어 곧 툴리가 퇴장하기 직전이기도 하다. 이를 마를로가 차 사고가 나서야 내 앞에 툴리가 자기 자신임을 자각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긴 했지만 이는 너무 편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첫 번째 질문을 다시 해본다. 물속에서 유영하던 누군가를 밝히는 게 아닌(과거 또는 현재 마를로일 것이다) 왜 물 속이냐는 것이다. 꿈속 물속은 어둡지 않다. 아름답고 평온하다. 그 물속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완되는 느낌이다. 이 이완의 연유는 극도의 피로감, 불면증에서 오는 피로감이다. 불면증을 겪어 본, 특히 오래 겪어 본 사람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불면증을 꽤 오래 겪고 있다. 불면증을 겪다 보면 잠깐 또는 가끔 꿈 조차도 꾸지 않는 사람들이 숙면이라고 하는 걸 할 때가 있다. 그 물속 씬은 잠을 못 잔 마를로가 지금 숙면하고 있다라고 관객에게만 보내는 신호이다. 그러니까 마를로가 꾸는 꿈속 장면은 아니다. 그녀는 지금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고 억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마를로는 툴리가 온 이후 너무 잠을 잘 잔다며 기뻐한다. 툴리가 온 이후 마를로는 생기를 되찾는다. 화장도 한다. 입는 옷 색상과 디자인도 무채색이거나 단색에 단출한 디자인이었으나, 툴리가 온 이후부터는 화려해진다. 잠을 잘 자게 되면 사람이 활력이 생긴다. 간단하고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를로가 꾼 물속 장면은 같은 환자로서 평온하고 깊은 잠을 잔 듯한 느낌으로 먼저 와 닿았다. 해석이 필요 없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세 번째 물속 씬에서 툴리는 인어로 나타나서 차 안에 갇힌 마를로 안전벨트를 풀어주고는 잠시 서로를 응시하고는 각자 갈 길 간다. 툴리는 화면 왼쪽으로 빠져나가고 마를로는 물 위로 헤엄쳐 오른다. 근데 왜 인어인가? 솔직히 이 질문에 나의 해석은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근데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이 씬까지 영화는 툴리가 마를로의 어릴 때 자신임을 알려주지도 않고 단서도 주지 않는다. 이쯤 돼서야 툴리가 실존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으로 인어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인어는 실존하지 않는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래서 환상을 지시하는 상징이지 않을까.
마지막 세 번째 질문, 왜 25살 때 자신을 소환한 것인가? 마를로는 한 밤중에 양 가슴에 모유 수축기를 단 채 털썩 앉아 어두운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 숏은 처음 반복되는 독박 육아 모습 중 하나의 숏이면서, 툴리가 등장하기 직전에도 등장한다. 이 숏은 그래서 마를로가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을 거부하고 변화를 꾀하는 전환점으로도 기능한다.
그때 마를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 스물다섯 살. 자기를 흠모하던 남자를 회전목마에 다 태울 수 있을 만큼의 매력이 넘치던 그 스물다섯 살 툴리를 떠 올렸을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툴리가 보모인데 야간에만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낮에는 잠만 잔다고 한다(이 부분은 마를로 희망사항 같다). 밤에는 모든 식구가 잔다. 마를로 자신이 누군가를 돌볼 필요가 없어진다. 갓난아기도 젖만 물리거나 냉동실에 있는 모유를 먹이면 잠을 잔다. 뭔가 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인 것이다.
툴리는 아기만을 돌보러 온 게 아니라 마를로도 보살피러 온 것이라 말한다. 변화의 전환점이 된 위에서 말한 그 숏에서 마를로는 전성기 시절 자신을 떠올릴 때, 과거의 그녀 툴리 또한 마를로에게 ‘너부터 돌봐’라고 말했을 것 같다.
자유와 변화가 가능한 밤에 매력과 자신감 넘치던 툴리로 돌아간 마를로는 주변을 바꾸는데 열을 올 올린다. 집 안 청소를 하고, 냉동 피자로 때우던 저녁 식사는 오븐에 구운 닭으로 바꾸고, 예쁜 머핀을 만들어 아이 어린이 집에 가져가고, 남편과 뜨거운 밤을 보낸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영화 속 툴리는 너무 멀리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집에서 말하기 싫어서 브루클린에서 한 잔 하러 온 것이라 말한다. 툴리 그러니까 마를로가 만들어낸 전성기 시절 자신은 더 이상 밤에 안 자고 이런 생활을 하면 자신에게 큰일이 일어날 걸 알기 때문이다. 비록 잠깐의 숙면을 취한다고 해도 무리이다.
결국 마를로에게 의사는 과로와 정신이상 진단을 내린다. 그래도 병실 속 마를로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다. 툴리를 떠나보낸 그 순간에도.
그제야 남편은 설거지를 함께 한다. 혼자 다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달이 나야지만 남편이란 남자는 정신을 그것도 조금 차릴 수밖에 없는 건가...
우리나라로 치면 독립영화에 들어갈 <툴리>가 투자를 받아 제작된 점도, 세계적인 스타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인 점도 우리나라에서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이런 점이 부러우면서도 국내 영화 다양성이 없어져 가는 점에 우려도 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을 보면서 관객들 역시 좋은 영화, 좋은 컨텐츠를 계속해서 원하고 바라고 있다. 좋은 컨텐츠는 다양성 안에서 자랄 수 있다. 몇몇 대형 제작, 배급사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지구와 인류,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보다 황폐해져만 가는 감성과 지혜에 공급되어야 할 자양분은 우리들 속 작은 이야기에 더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