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영화 <암수살인>과 <극비수사> 소신 있는 사람

오피스아웃 2023. 2. 23. 17:29

각본: 곽경택, 김태균

감독: 김태균

 

형사 사건이 일어났으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남겨졌다 하여 암수 범죄(hidden crime), 그 사건이 살인사건이어서 암수살인이라 하는데, 부산에서 실제 벌어진 암수살인이 영화의 배경이다.

 

영화 <암수살인>은 살인범은 강태오(주지훈)라고 알려주며 시작한다. 강태오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밝혀져 형량을 줄이는 전략을 세우고 여기에 김형민 형사(김윤석)을 끌어들인다.

이런 범인 전략도 금방 간파 되면서 이 둘의 두뇌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흥미를 돋게 만든다.

 

하지만 <암수살인>은 흥미진진한 두뇌 플레이 범죄 수사물에 멈춰서 있지 않다.

 

영화 속 암수살인을 파헤치는 김형민 형사는 주변에 만류에도, 이미 암수살인을 쫓다 패가망신한 선배 형사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하여도, 그러다 결국 파출소로 좌천이 되어도 결국 암수 살인 전말을 밝혀낸다.

(출처: 다음 영화)

법정에서 살인범 강태오가 저지른 범죄 입증이 불리해지고, 태오 입을 열기 위해 돈과 사제 용품을 넘긴 불법 행위까지 들통이 나 형사 지위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김형민 형사는 판사가 마지막 할 말 없냐고 묻자,

 

“지금 형기 마치고 나오면 강태오 나이 50대 입니다. 아직 힘이 남아 분명 또 살인을 저지를 것입니다. 저런 놈은 절대 사회로 나오면 안 됩니다!”

 

저 말만 떼어 놓고 보면 재판정에서 조금이라도 좋게 보이려고 한 말 같지만, 영화 내내 형사 김형민 태도와 행동은 오직 강태오가 말해 준 단서와 주변 탐색에만 집중한다. 그는 수사를 위해 마약단속반에서 스스로 강력계 형사과로 자리를 옮기고, 파출소에 근무하더라도 사건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암수살인>은 형사의 소신을 보여주는 영화다. 

 

형사의 소신을 그린 또 다른 결이 상당히 비슷한 영화는 2015년에 개봉한 <극비수사>이다.

(출처: 다음 영화)

‘소신’은 실제 <극비수사>에서 공길용 형사(김윤석) 입을 통해 이 영화가 소신을 가진 형사 이야기임을 선언한다. 물론 소신은 공길용 형사 파트너인 역술인 김중산(유해진)도 만만치 않다.

증거와 논리를 기본으로 한 형사와 그와는 정반대에 있는 미신이라 여겨지는 ᅳ 그러나 동양 특히 한국 정서에서는 충분한 납득이 가는 ᅳ 역술, 점을 치는 역술인과의 소신이 시너지를 일으킨다. 그 소신은 범인 검거가 1순위가 아닌 유괴된 아이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1순위인 것이다.

 

<극비수사>와 <암수살인>은 실화가 바탕이기는 하나 참신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업에 책임감과 가치를 명확히 제시하며 남들이 알아주던 아니던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을 좋은 배우가 담아낸 잘 만든 한국형 범죄 수사물 영화라 생각한다.

 

두 영화는 ‘형사의 소신’이란 것 이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실제 사건을 그것도 모두 부산에서 일어난 유괴(극비수사)와 살인(암수살인) 사건을 다루며, 형사 역 모두 김윤석 배우이다.

주제가 유사하고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두 영화 모두 각본이 ‘곽경택’이기 때문이다. <극비수사>에서는 각본, 감독을, <암수살인>에서는 각본과 총괄제작을 맡았다.

 

각본가이자 감독 곽경택 필모그래피를 보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3편이며 현재 진행 중인 ‘장사리 9.15(가제)’까지 포함하면 4편이나 된다. 이미 나온 3편 모두는 소신 있는 사람 이야기다. 첫 번째 작품은 2002년 개봉한 <챔피언>으로 프로복서 ‘김득구’ 선수의 일생을 그린다. 링 위에서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김득구 복서의 인생은 복싱 그 자체이다.

(출처: 다음 영화)

그다음 작품이 <극비수사>이고, 세 번째 작품이 <암수살인>인데, 조금 걱정되는 점도 있다.

‘소신’을 밀어붙이는 에너지, 절박함이 점점 약해진다고 느껴진다. <챔피언>에선 죽음이 코 앞에 온 걸 알고 있어도 다시 링 위에 서며, <극비수사>는 가족 생계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배신을 당했어도 다시 동일 유괴 사건을 맡기도 한다.

 

반면 <암수살인>에서 형사 김형민은 우선 범인 잡는 것이 재밌다고 말한다. 김형민 친형은 사업가로 경제적 도움도 받을 수 있어서 다른 영화 속 형사들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 보이며(아무리 그래도 김형민 차가 제네시스란 설정은 잘 이해가 안 간다. 상당히 보수적인 경찰 조직에서 자신 상관보다 좋은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건 좀…), 건사해야 할 가족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소신도 있는데 에너지까지 활활 타오르는 실화가 매우 희소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상상’이란 바닥을 딛고 있다. <암수살인> 김형민 캐릭터의 설정과 주변 조건을 좀 절박한 환경에 놓았었더라면 드라마적인 긴장이 좀 더 커졌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배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김윤석. 그의 필모에서 형사 역할은 절대적이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년)부터 형사 역할을 시작한 김윤석 배우는 그 이후로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극비수사>, <암수살인>까지 5편에 이른다.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분량이 적은 조연이어서 뺀다면, 다른 4편에서의 전현직 형사 그것도 거친 강력계 형사 역할을 하였다. 거친 표정과 막무가내식 행동 등 강력계 형사가 주는 이미지 프레임에 갇혀 비슷비슷한 연기를 보여 주기 쉬운 역할이다. 하지만 김윤석 배우는 작품마다 각 캐릭터 성격이 다르게 들어나게끔 세밀하게 표현한다. 특히 <극비수사>와 <암수살인>에서 그런 면이 도드라진다.

 

형사적 직관과 능력을 보여주면서도 <극비수사>는 좀 더 순수하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영화 초반 속물적인 면도 보여주며 캐릭터를 풍부하게 한 반면, <암수살인>에서는 확신에서 온 노련미와 증거 추적에서의 섬세함을 잘 잡아낸다. 코너에 몰려도 언성을 쉽게 높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 실수도 덤덤하게 인정한다. 영화 <세븐>에서 모건 프리먼이 맡은 소머셋 형사가 떠올려진다.

(출처: 다음 영화)

배우 주지훈 역시 범죄심리학자가 ‘판정 불가’로 내린 살인범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낸다. 표정, 말투, 눈빛, 걸음걸이, 앉은 자세, 글을 쓸 때 모습 등 작은 하나하나 세심한 신경을 기울인 모습이 보인다. 주지훈 필모에서 배역은 매우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영화 <아수라>에서부터 연기를 잘한다고 느꼈는데 그 이후 배역의 스펙트럼이 넓어져도 연기력이 흔들리지 않은 걸 보면 분명 주목해야 할 배우임에 틀림없다.

 

‘소신’ 중심 바탕으로 하여 업의 특성상 정반대인 역술인과 형사의 케미를 그린 <극비수사>, 영화 초반부터 범인을 밝히고 그의 암수살인을 밝혀나가는 설정, 범인 강태오가 입었던 무스탕, 피해자 피임기구 등 참신한 소재로 반전을 이끌어 가는 재미까지 있던 <암수살인>.
이 두 작품이 가진 주제와 재미를 곽경택 감독의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희망해 본다.